현종 대 조선은 예송 논쟁의 시기였다.그러나 같은 시기 지방에서는 흉년과 재정 부담이 점차 누적되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였다. 한쪽에서는 예(禮)의 해석이 정국을 움직이고 있었고,다른 한쪽에서는 곡물의 배분이 백성의 생존을 좌우하고 있었다. 이 시기는 규범과 현실이 동시에 시험대에 오른 시대였다. ⚖ 예학의 정치화 – 예가 곧 권력의 기준이 된 시대조선은 성리학 국가였다.예는 단순한 의례 규정이 아니라 왕통·적통·군신 관계를 규정하는 국가 질서의 틀이었다. 1659년의 기해예송, 1674년의 갑인예송은 상복 기간 문제에서 출발한 사건이었다.그러나 그 본질은 왕통 해석과 정치적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이었다. 이미 인조·효종 대부터 붕당 정치 속에서 예 해석은 중요한 정치 자원이 되고 있었다.현종 대 예송은 그..